반첩여(班?仔)는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후궁이다. 한 때 총애를 받았던 그녀가 새로 총애를 받게 된 조비연(趙飛燕)의 참소를 받았다. 조비연은 황제의 총애가 다시 반첩여에게 쏠릴 것을 두려워해 무고했으나 원죄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반첩여는 시샘과 모함 투성인 후궁들 사이에서 떠나 황태후가 사는 장신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황제의 총애는 이미 포기했지만, 문득 문득 과거의 영화며 황제에 대한 그리움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반첩여가 지은 시가 ‘한서’(漢書)에 전한다. 제목은 철 지난 가을 부채란 뜻의 ‘추선’(秋扇)이다.
‘(전략) 합환선을 만드니 둥굴고 둥굴기가 명월인듯 하여라 / 님의 소매속을 나며들며 흔들려 미풍을 일구네 / 두려운 것은 가을이 와서 더위를 앗아갈까 함이러니 / 이미 버려져 님의 은정이 끊어지고 말았구나’ 자신의 처지를 가을 바람이 불어 쓰다버린 부채를 빗대어 시로 읊었던 것이다.
후세에 왕충이란 사람은 이 시를 보고 한술 더 떠서 가을 부채가 아닌 ‘겨울철 부채에 여름철 화로’라 하여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고 했다. 여름엔 싫은 것이 뜨거운 화롯가다. 또 겨울에는 보기만 해도 추운 것이 부채다.
‘하로동선’은 화로나 부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동로하선’(冬爐夏扇)의 시절도 있다. 현명한 사람은 그래서 겨울에 부채를 챙겨두고 여름에 화로를 손질해두는 생활의 지혜를 갖는다.
이 해가 저문다. 2007년이 역사속에 묻혀간다. 한 해가 또 저마다 인생의 궤적속에 묻힌다. 돌아보는 한 해는 보람도 있고 후회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래도 산다는 것은 행복하다. 현재가 있으므로 하여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음이 맑으면 열린 미래가 보인다. 세모에 갖는 설레임은 새해 새희망에 대한 설레임이기도 하다.
‘일엽천하추’(一葉天下秋)라, (떨어지는) 나무 이파리 하나가 세상에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지만, 새벽잠이 날밝는 줄 모른다는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의 봄철도 이어 온다. 반첩여의 시 ‘추선’은 사랑을 노래한 것이지만 세상사 이치는 가을 부채도 여름 부채로 또 쓰이고, 여름이 지나면 화로를 찾는 겨울이 또한 오기마련인 것이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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