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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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러브(Love)에 해당하는 ‘연애’라는 말은 한국에서 1912년 소설에서 처음 나왔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조중환의 번안소설 ‘쌍옥루(雙玉淚)’에서 청춘 남녀의 연애를 ‘매우 신성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상협이 쓴 ‘눈물’에선 연애를 순결·신성 따위의 수식어와 함께 썼다. 1920년대 들어 연애라는 말은 젊은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대중적인 말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의생활에서 서양 복식을 처음 받아들인 것은 별기군이다. 1881년에 창설한 별기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근대식 훈련을 받으면서 복식도 서양식으로 바꿨다. 처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1881년 일본에 조사시찰단으로 갔던 김옥균, 서광범, 유길준, 홍영식, 윤치호 등이었다. 1884년 갑신 의제개혁, 1894년 갑오 의제개혁, 1895년 을미 의제개혁 등을 통해 군복과 관복 등에서 ‘거추장스러운 옷을 간편한 옷으로 바꾸도록’ 조치했다. 1900년엔 관리들의 관복을 양복으로 바꾸고, 일반인이 양복을 입는 것을 처음 정식으로 인정했다.

독일 여성 손탁은 1902년 고종이 하사한 서울 중구 정동 땅에 2층 양옥을 지어 ‘손탁호텔’을 열었다. 이 땅의 첫 레스토랑이었다. 그뒤 충무로에 양식전문점인 ‘청목당’이 들어섰다. 중국 음식점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중국 군인과 함께 중국 상인이 들어오면서 따라 들어왔다.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면서 1899년 무렵 화교들은 자장면을 기본으로 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점은 중국 사람이 많이 사는 서울 중구 북창동 일대를 비롯, 인천·평양 같은 곳에 많이 들어섰다. 서양 문명의 상징처럼 여겼던 커피는 한국인으로선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처음 맛을 보았다고 한다.

개항 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외교 활동을 위한 공간을 짓고 새로운 숙박시설인 호텔도 만들었다. 1884년 인천에 세운 세창양행 사택은 독일인 회사의 숙소로 쓰려고 지은 집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선 맨 처음 양옥으로 전해진다.

‘카인’만 빼고 ‘처음’ ‘최초’는 새로운 느낌을 준다. 1912년 처음 등장한 연애란 말이 그 시절처럼 신성하고 순결하게 쓰여졌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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