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전용 헬기의 교체 예산을 내놨다가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청와대는 “우리가 타려는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해 초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 보잉사 회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는 보잉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전용기를 사자고 했더니 국회에서 (예산을) 깎아버렸다”고 원망했다. 야당과 누리꾼들이 “국회와 국민을 모독한 발언”이라고 발끈했다. 대통령이 ‘미국 군산(軍産)복합체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보잉사 회장 앞에서 나라 흉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전용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간 급유 없이 지구 둘레의 3분의 1인 1만2천600㎞를 비행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1985년에 도입된 낡은 기종이고 2010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항속 거리가 짧아 갈 수 있는 나라가 중국 일본 정도다. 그래서 청와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전세기를 임차해 사용한다. 임차 비용과 신형 항공기 구매가격을 따져 보면 새로 구입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고 청와대는 하소연했었다. 노 대통령은 “내가 타려는 것도 아니고 다음 대통령을 위한 일인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서운해 했었다. 2010년이나 돼야 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에어 포스 원’은 미국 대통령의 상징 중 하나다. 194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생겼고, 현재의 초대형 최첨단 B747-200은 1962년 존F 케네디 대통령이 장만했다. 그는 기체에 커다랗게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쓰고 성조기를 그려 자존심을 과시했다. 그것을 ‘하늘의 백악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백악관처럼 안전하게 집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영국·프랑스는 물론 중국·이탈리아·스페인·멕시코 등도 ‘날아 다니는 집무실’을 갖고 있다.
어느 누구든 대통령은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처리할 업무가 많다. 형식과 체면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게 외교다. 전용기는 3부 요인도 이용하고 국가적 행사에도 쓰인다.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전용기 도입하자고 하면 국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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