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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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이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국사회상을 잘 반영한다. 2001년엔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서게 되면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교육정책과 교수 신분 불안 때문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사자성어는 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 ‘이합집산(離合集散)’ 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입신양명을 위해 철새 정치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정치인들을 빗대서 한 말이다.

2003년은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종잡지 못하는 모습이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각 분야에서 정책 혼선이 빚어지고 갈피를 못잡아서였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했던 2004년은 옳고 그름의 여하간에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이르는 ‘당동벌이(黨同伐異)’로 선정했다.

2005년엔 ‘상화하택(上火下澤)’이었다. 사히 각 분야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과 분열을 일삼은 행태를 꼬집은 사자성어였다. 2006년 사자성어는 ‘밀운불우(密雲不雨)’였다.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란 뜻이다. 2007년엔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사자성어였다.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이 들어 맞는 건 사회저명인사들의 학력위조, 대학총장과 교수들의 논문표절, 유력 정치인들과 대기업의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해서였다. 교수신문 필진,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주요 학회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이 선정한 사자성어답게 모두가 시의적절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008년 신년 사자성어로 ‘시절이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뜻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발표했다.

여기에 이덕일 역사평론가가 “(시화연풍은) 원래 ‘모시정의(毛詩正義)’ 소아(小雅)편에 나온다. 만물이 성다하고 인민들이 충효한즉 시화연풍에 도달한다. ‘진서(晉書)’ 식화지(食貨志)와 ‘송서(宋書)’ 공림지(孔琳之) 열전에 ‘천하무사하고 시화연풍하니 백성들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한다(天下無事, 時和年豊, 百姓樂業)’라고 하였다”고 밝혔다. 사자성어의 뜻이 오묘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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