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2000’ 哀話

미증유의 대참사, 이천 ‘코리아 2000’ 냉동창고 화재는 지하1층이 거대한 하나의 폭탄이었다. 보온 및 단열을 위해 마감재로 쓰는 우레탄폼과 인화성 액체를 섞는 발포작업으로 이들 원료가 굳으면서 뿜는 휘발성 증기가 지하에 가득했던 것이다. 이런 악조건속에 근로자들을 일 시킨 회사측 책임이 무겁다.

지하 작업장에 가득한 휘발성 증기는 불길만 닿으면 일시에 폭발, 번개처럼 번진다. 한데, 폭발을 일으킨 점화가 뭔지 분명치 않다. 용접설이 있지만 용접공사를 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여러 갈래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화재 당시 작업중인 창고에 224t짜리 물탱크를 갖춘 스프링클러가 있긴 있었는데 무용지물이 됐다. 폭발과 함께 건물이 붕괴되면서 파손된 걸로 볼 수도 있고, 시설 불량으로도 볼 수가 있다. 건축허가·소방준공검사·건물사용승인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일시에 40명이 숨진 화재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대 참사다. 신원이 확인 안 된 30명은 손상이 심해 앞으로 보름가량 걸리는 유전자 감식을 통해 누군지를 알아내게 된다. 날품으로 일한 사람들이다. 신원미상의 사망자 유가족 중엔 남편이나 누가 불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변을 당한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가족이 적잖을 것 같다.

신혼 3개월만에 아내의 몸에 유복자를 두고 비명에 숨진 신랑이 있는가 하면, 코리안 드림을 안고 국내에 온 이국인·중국 동포 등이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앞으로 숨진 이들의 신원이 밝혀지면 기막히도록 애절한 사연이 또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일당 몇 만원을 벌기위해 폭탄속 같은 삶의 터전에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이들이다. 열심히, 성실히 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 왜 처참한 떼죽음을 당해야 했는가, 누가 이들을 죽게 만들었는 지를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필사의 탈출로 목숨을 기적적으로 건진 10여명의 중상자들 또한 거의 전신 화상으로 상태가 심각하다. 지옥과 같은 화재 현장의 충격적인 전율로 심적 안정도 아직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중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안전불감증이 심해도 너무 심하고, 인재이긴 해도 너무 어이없는 인재다. 누구의 책임인가? 정부는 선진국 진입을 말해도, 서민들의 근로 현장에는 후진국보다 더한 ‘저진국’ 수준의 이런 사각지대가 널려 있다. 당국은 이런 사고가 더는 없도록 각성해야 된다. 원혼의 명복을 빈다. 이천 시민회관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웬지 썰렁하기만 하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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