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값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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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IT 연구진은 2002년 12월 생쥐(mouse)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2001년 4월 인간 게놈이 파악된지 1년 반 만이었다. 유전자 연구 대상으로 다른 많은 동물 중에 생쥐를 선택한 것은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은 데다 쥐와 인간의 게놈이 97% 비슷하기 때문이다. 침팬지 같은 원숭이류가 더 적합할 수도 있지만 침팬지의 유전자를 바꿔 결과를 새끼에서 확인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쥐는 1년 안에도 몇 대손을 볼 수 있고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장점이 있다.

1994년엔 몸값이 100억원이 넘는 쥐가 탄생했다. 미국 록펠러 대학의 제프리 프리드먼 박사는 비만과 당뇨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앤 쥐를 만들었다. 거대 제약업체인 암젠은 2천만 달러(당시 160억원)를 들여 이 쥐에 대한 특허권을 사갔다. 쥐와 인간의 유전자가 공통점이 많은 만큼 쥐의 비만을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의 비만도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몸값이 높아진 쥐들은 초호화 호텔에 준하는 거주 환경이 제공된다. 미세 필터로 미생물을 길러낸 깨끗한 공기를 공급받고 사료나 물도 멸균 처리한 것만 먹는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소음까지도 통제한다. 어렵게 만든 유전자 변형 쥐가 장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쥐는 인간을 대신해 각종 유전공학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화 촉진 유전자를 넣기도 하고 신약 후보물질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독성 검사도 대신한다.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검증하는 데도 이용된다. 예컨대 ‘베타 3-AR’이란 동물 유전자는 당뇨병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인체의 베타3-AR 유전자는 치료에 효능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부작용까지도 있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쥐의 베타3-AR을 지우고 사람의 같은 유전자로 대체하는 식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2007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유전자 변형쥐를 생산한 연구진에 주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곳간의 식량을 갉아 먹고 페스트 같은 몹쓸 병원균을 옮기는 해로운 동물로 여겨온 쥐가 지난 세월 인류에게 끼친 해악을 넘어 인류의 구세주(?)로 떠오르다니 자연 세계의 변화가 놀랍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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