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자유심증주의에 의해 재판을 한다. 재판에 필요한 사실의 인정, 증거의 가치판단, 법리해석을 판사의 심증에 일임하는 것이 자유심증주의다.
그러니까 검사가 아무리 증거를 주장해도 판사가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피고인이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특정사실에 판사가 증거능력이 있다고 보면 유죄가 되는 것이다. 이의 심증형성은 곧 어떻게 맘먹느냐에 달렸다.
이같은 심증형성엔 판사의 식견이 중요하다. 판사의 성장환경, 즉 개인적 성품, 인생관 등도 작용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이다. 사실 여부의 인정, 증거능력 유무의 최종적 판단은 양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판사의 자유심증주의는 판사의 양심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판사가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사실 여부의 인정, 증거능력의 유무를 왜곡하면 얼마든지 무죄를 유죄로 할 수 있고, 유죄를 무죄로도 할 수가 있다. 판결이유는 하기로 작심하면 찍어다 붙이기에 달렸다.
그래서 재판을 두고 ‘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가령 성품이 거칠거나 부정적인 인생관을 가진 판사와 성품이 부드럽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닌 두 판사의 경우, 재판에 미치는 양형 또는 유·무죄의 법리해석에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더 잘 만나야 하는 것은 양심을 팔지않는 판사다. 자유심증주의의 신념, 즉 양심을 팔지 않는 재판을 위해서는 심성이 깨끗한 양심있는 판사여야하고,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에 자신의 양심을 돈 5천만원에 팔아먹은 인천지법 관내 모 부장판사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이 사람의 진술이 가관이다. 뇌물을 받은 게 아니고 거래했던 돈이 있어 받은 돈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궤변인데, 평소 재판도 그같은 궤변식으로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상한 것은 그 부장판사는 옷만 벗고 사법처리가 안되고 있는 점이다. 참으로 공정치 못하다. 죄를 지어도 옷만 벗으면 죄를 묻지않는 관행은 못된 구습으로 타파돼야 한다.
유식한 사람의 반사회성은 무식한 사람의 반사회성보다 훨씬 크고, 권력있는 자의 범죄는 권력없는 자의 범죄보다 죄질이 비할 수 없이 더 나쁘다. 재판은 판사의 양심으로 한다. 판사를 지고하게 보는 이유가 이에 있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