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한 서부영화 ‘하이 눈(High Noon)’이 50여년간 백악관에서 가장 많이 상영된 ‘최고 인기 영화’였다고 한다. ‘하이 눈’의 주인공은 보안관으로 홀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재임기간 중 3번, 빌 클린턴은 무려 20번이나 ‘하이 눈’을 관람했다. 대통령에게 인기 있었던 다른 영화로는 험프리 보거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카사블랑카’와 알렉 기네스 주연의 ‘콰이강의 다리’, 오드리 헵번 주연의 ‘사브리나’와 ‘로마의 휴일’ 등이다.
백악관 영화 상영은 1915년 우드로 윌슨이 기념비적 초기 영화인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을 보면서 시작됐으며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이 영화를 즐겨 봤다고 한다. 아이젠하워는 서부영화를 좋아해 재임시절 서부영화만 200편 이상을 보았다. 그는 2차대전의 영웅으로 불린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전쟁영화는 절대 보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은 영화를 150편 이상 봤으며, 1970년 캄보디아 비밀 폭격을 시작할 당시엔 독선적인 장군 패튼의 이야기를 담은 ‘패튼 대전차 군단’을 1주일 동안 두 차례 연달아 감상했다. 재임시절 가장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아나라 지미 카터였다. 총 580편의 영화를 본 카터는 백악관에서 ‘X(제한상영) 등급’을 받은 성인영화인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튼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이며 그가 백악관 입성 이후 가장 먼저 본 영화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D-13’이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고독한 영웅을 닮고 싶어하는지 ‘하이 눈’을 가장 많이 관람했다.
한국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은 연산군 시절 왕권과 신권(臣權)의 갈등을 그린 ‘왕의 남자’를 봐 ‘盧의 남자’란 조어가 나오게 했는데,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감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영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 팀이 결승전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실화극이다. 이 당선인은 영화 취향도 ‘실용’인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