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왕 나 비 - 임애월

아무도 내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무의식의 지층 깊은 곳에서

떠나야한다고

그것이 숙명이라고

희미한 떨림으로 수신된 메시지

여린 촉수의 예감에

긴 그리움을 싣고

가량없이 낯선 비행길에 오르면

절제된 날갯짓만이

거친 바람을 가를 수 있다

스쳐가는 황무지의 밤은

장미의 가시처럼 고독했으나

가시에 찔린 내밀한 상처는

차라리 감미로웠다

깊은 어둠의 시간을 지나고

견고한 금단의 경계를 넘어서면

푸른 잎맥으로 가득 찬

목빛 맑은 始原의 전나무 숲이여

서러운 날개마다 돋아나는 찬란한 문양이여

아무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광활한 제국의 아침을 나는 보았노라

<시인 약력> 제주도 애월(涯月) 출생 / ‘문학과 세상’으로 등단 / 시집 ‘정박 혹은 출항’ / 경기문학인상· 수원문학상 작품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 한국본부·수원문인협회 회원, 경기시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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