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김영삼(YS) 대통령 후보는 해양수산부 신설을 공약했다. 이보다 앞서 1966년 수산청이 농수산부에서, 1976년 해운항만청이 교통부에서 분리됐다. 1996년 8월 YS의 공약대로 장관급 해양수산부가 신설됐다. 남해 거제도 출신의 ‘바다 사람’ YS가 고향사람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 업적(?)이었다. 그전 해양수산부는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이란 차관급 ‘청’ 조직이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폐지 1순위로 거론됐다.
김대중(DJ) 정부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걸며 해양수산부를 없애기로 했다. 물론 관련 단체들의 폐지 반대 신문 광고가 등장하는 등 반발이 거셌다. YS가 직접 나섰다. 1998년 2월초 대통령이던 YS는 당선인 신분의 DJ에게 해양수산부를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DJ는 YS의 민원(?)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해양수산부 장관 자리가 당시 DJ와 공동정부를 구성했던 자민련 몫으로 정리되면서 해양수산부는 기사회생했다. 지난 10여 년간 정치인 출신 장관이 유독 많았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은 신상우 당시 한국당 의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DJ 정부 때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해양수산부가 설립 12년 만에 또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해양수산부의 수산 부문을 농림부로, 항만·물류·해양 부문을 건설교통부로 합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가 산하기관을 동원해 반대 광고를 내고, 부산지역 4개 국립대 총장이 반대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장관까지 나서 ‘폐지 불가론’을 주장했다.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전 세계가 해양정책을 확장하는데 해양수산부를 해체하는 것은 국제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의 모토 ‘절약하며 일 잘하는 실용정부’를 앞세운 집권층의 표정은 냉랭하다. 어림없다는 식이다.
만일 1998년 2월 YS가 DJ에게 한 것처럼,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당선인에게 ‘해양수산부 유지’를 부탁한다면 혹 들어줄까. 정부 조직 축소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나 국토의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이 해양수산부를 폐지하려는 것은 여성부와 농촌진흥청을 없애려는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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