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1884년 영국에서 민주사회주의 바람이 불었다. 페이비언주의(Fabianism)다. 사회주의 실현을 폭력 혁명이 아닌 의회주의에 의해 점진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1848년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혁명적 마르크스 사회주의와 차별화된 이 페이비언주의는 청·장년층의 인텔리 계층이 많이 참여했다. 페이비언협회는 이들이 만든 단체다.

민주노동당은 국내에 유일한 진보정당이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의 득표에 그쳤다. 국민의 철저한 외면은 진보정당의 존립이 위협받는 지경이 됐다. 이에 평등파가 자주파의 ‘종북주의’ 청산을 당의 혁신 방안으로 냈으나, 다수 세력인 자주파의 거부로 무산됐다.

대선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심상정 의원을 비롯, 노회찬 의원 등 평등파 중진의 탈당 예고로 무더기 탈당의 도미노 현상이 일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가 직면했다. 순수한 진보정당다운 새 진보정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잣대가 평양정권에 대한 종북위주로 맞춰져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평등파가 주장하는 새 진보정당 노선이다. 진보정당은 필요하다. 보수정당을 견제할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은 있어야 한다.

페이비언협회는 노동당 창당에 참가하여 오늘날 영국의 사회주의운동에 아류를 이루고, 독일 사회민주당(SPD),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 집결된 유럽의 여러 사회주의 정당이 신봉하는 민주사회주의의 원류가 됐다.

중간에 쇠퇴의 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이후에는 1·2차 세계대전 등으로 페이비언주의가 일시 주춤했다. 영국의 사회주의 재건에 공헌한 것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나서다. 특히 사회보장 제도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한 실현을 보게 된 것은 페이비언협회가 활동한 공이 크다. 영국의 복지국가는 페이비언주의가 바탕이 됐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따른 평등파의 신당 창당이 영국의 민주사회주의, 즉 페이비언주의를 연상케 한다. 아마 새 진보정당의 표방이 그와 같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왕이면 혁신방안이 받아들여져 분당 사태없이 추진됐으면 좋았을 것인데 유감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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