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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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부에 사는 검은 머리 솔새는 가을마다 남미로 날아간다. 3천800㎞에 달하는 비행거리도 놀랍지만 이를 나흘 만에 주파하는 체력은 경이롭다. 나흘 밤낮을 꼬박 날아가면서 솔새의 체중은 반이나 준다. 체중을 비행 연료로 간주한다면 연비는 무려 ℓ당 27만5천㎞에 달한다. 우리 주위의 제비 역시 먼 필리핀이나 호주에서 날아온다.

철새의 신비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부분은 철새가 어떻게 목적지를 분별하는가 하는 점이다. 학자들은 철새가 동서남북의 방위를 인식하는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1957년 유럽의 학자들은 찌르레기(starling)가 남북을 구별하는 지를 실험했다. 북유럽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찌르레기 1만1천마리를 중간인 네덜란드에서 낚아챈 뒤, 남쪽으로 160㎞를 더 이동한 뒤 풀어줬다. 하지만 찌르레기는 이상 없이 원래의 목적지로 날아갔다. 10년에 걸친 이 실험에서 찌르레기는 자신이 남북 어디에 있는지를 분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학자들은 또 철새가 어떻게 대륙을 넘나드는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한 끝에 새들이 지구 자기장을 이용할 것이란 가설을 내놓았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자기장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철새가 거대 자석인 지구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달라지는 자기장의 세기를 감지해 위치를 파악한다는 이론이다.

갖가지 추론과 실험에도 불구하고 수천㎞를 날아왔다 정확히 돌아가는 신비의 능력과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적인 조류학자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기러기는 20년 된 최고 연장자가 선두를 이끌고, 두루미는 매일 출발하기 전 공중을 살핀 후에 비행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 새의 학습능력이 내비게이터의 중요한 밑바탕이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아직은 모든 이론이 가설에 불과하며 철새의 내비게이터는 여전히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조물주 만이 알 수 있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철새 이야길 하다보니 연상된다. 국회의원 선거철 만 되면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정치꾼들을 ‘철새’라고 비아냥거리는데 그 말은 아무래도 잘못됐다. 철새들은 정확한 목적지가 있지만 지조 없는 정치꾼들은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 보지 못한다. 갈 데만 알지 올 데를 모른다. 그런 위인들을 ‘철새’에 비유하는 건 대단한 실례다. 철새를 모욕하는 일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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