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 & 해리 왕자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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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제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19세의 공주였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전쟁에 직접 참가해 기여하고 싶다”고 아버지 조지 6세를 졸랐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아 그해 3월4일 WATS(Women’s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했다. 여성들로 구성된 WATS는 1938년 창설 당시엔 주 업무가 취사, 사환 업무, 부대 내 매점 관리 등이었지만 전쟁이 확산되자 운전, 탄약 관리 등으로 확대됐다.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는 왕위 계승자였음에도 다른 병사들과 똑 같이 운전, 탄약 관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녀는 왕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던 손으로 흙바닥에 앉아 차량을 고쳤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무릎을 꿇고 앉아 트럭바퀴를 교체하는 모습, 트럭의 보닛을 열고 수리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당시의 활동상황을 입증한다.

영국의 해리 왕자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 배치돼 탈레반 반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해리 왕자의 복무 근무지는 탈레반과 불과 500m 떨어진 최전선으로 하루에도 수시로 박격포와 기관총 공격을 받는 최전선이었다. 폭격 지점 등을 조정하는 전투기 통제관인 해리 왕자는 ‘윈도우 식스 세븐’이란 작전명으로 연합국 조종사들과 교신해 왔지만 아무도 그가 왕자인지 알지 못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둘째아들인 그는 왕위 계승 서열 3위다. 영국 국방부는 해리 왕자가 오는 4월 귀국하면 참전 사실을 밝히기로 하고 영국 언론들과 비보도 협정을 맺었지만 호주, 독일의 언론 및 미국드러지 리포트가 이를 보도하는 바람에 공개됐다. 국방부는 신변노출에 따른 위험 증가로 해리 왕자를 즉시 귀국시키기로 결정했고, 해리 왕자도 자신을 ‘총탄을 부르는 자석’이라며 전우들에게 위험을 줄 수 있는 점을 우려해 복무 기간을 앞당겨 3월 1일 귀국했다.

‘영웅’ 대우를 받으며 전장에서 돌아 온 해리 왕자는 귀국 인터뷰에서 “영웅은 전장에 있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라고 말했다. 지뢰에 팔과 다리를 잃은 후 혼수상태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2명의 병사를 가리키며 “이들이 영웅”이라고 치켜 세웠다. 2차대전 때 운전병으로 복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손자가 얼마나 대견했을 것인가.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럽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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