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이던 1945년 4월25일 오후 4시40분이다. 독일을 동서 양면에서 진격하던 미·소 두 군인 대표가 엘베강 중류 토르가우의 파괴된 다리에서 만났다. 독일 평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엘베강은 중부 유럽 보히미아에서 발원하여 북해로 유입한다.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윌리엄 로버트슨 미 육군 소위와 소련군 제58사단 니콜라이 안드레예프 병사는 굳은 악수를 나눴다. “인류의 적인 나치 파시즘의 종말이 다가왔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엘베강의 맹세’가 있은지 일주일만인 5월7일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이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은 그해 8월15일이다.
그러나 지구에 평화가 깃들진 못했다. 미·소 냉전은 세계를 새로운 긴장 국면으로 몰아 넣었다. 1950년엔 한국전쟁이 발발, 3년2개월에 걸친 동족상잔으로 ‘시산혈하’를 이루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붕괴로 미·소 냉전이 끝났다. 하지만 지구촌은 국지전으로 여전히 영일이 없다. 미·소에 이은 미국·러시아의 신냉전이 싹텄다. 중국과 일본은 군사대국으로 치닫고 북녘은 핵 무장화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소치선언’이 발표됐다. 두 정상은 선언문 서두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적대시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지난 5~6일 이같은 회담을 가진 러시아 남부도시 소치는 흑해 연안의 휴양지다. 유황과 수소의 화합물인 황화수소 샘이 많고 여름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평화의 도시다. 푸틴 별장에서 열린 만찬 중 부시는 러시아 가무단 쇼에 맞춰 춤을 추는 등 두 정상의 만남은 시종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소치선언문’이 만찬 분위기만큼 화기애애한 것은 아니다. 완전히 합의된 것은 두 나라 교역 장벽의 철폐뿐이다. 동유럽 미사일방어(MD)기지 현안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푸틴이 핵 무기 사용 불사까지 언급했던 문제다. 추후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그쳤다. 6자회담 전폭지지, 한반도 비핵화 협력 계속은 원론적 얘기다. 당면과제인 북의 핵 신고 의무 불이행에 대한 대책은 빠졌다.
‘엘바강의 맹세’에서 ‘소치선언’까지는 63년의 세월이다. 시대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시대를 끌어가는 국민이 돼야 격동의 세월을 잘 넘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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