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춘희’ 방송원

북녘에서는 아나운서를 방송원이라고 한다. 방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을 방송원으로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면 아나운서라는 것 보다는 직함이 덜 분명하다. 여기서도 예컨대 코미디언을 방송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본다.

그렇긴 해도 순수한 우리말로 하는 표현은 듣기에 좋다. 남쪽 사회는 외래어가 너무 범람한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왔던 김일성대학 여학생이 영어 투성인 시가지 간판을 보고 “미 제국주의 식민지”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정부나 공공단체 발표문이나 언론에서도 토막 영어를 지나치게 남용한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우리끼리 우리 말로 해도 될 말을 우정 영어로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조선중앙통신사 텔레비전 방송에 ‘리춘희’라는 방송원이 있다. 대남 대외 성명 보도를 거의 전담, 남쪽 텔레비전 뉴스에 가끔 비치곤 하는 낯익은 얼굴이다. 올해 예순 다섯살로 ‘인민방송원’ ‘노력영웅’의 칭호를 받았다. 고급 주택에 자가용 승용차가 배정됐다.

북녘 방송원의 보도는 남쪽처럼 생활 대화조가 아니다. 연극 대사조다. 연극 대사 발음이 일부러 만들어내는 목소리로 가성(假聲)인 것은 큰 소릴 내야 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 방송원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가성이다. 또 성우이기도 하다. 보도 내용에 따라 말투가 그때마다 다르다. 북에서는 방송이 통신의 범주에 든다. 그러니까 통신 교류를 예로 들면 여기서는 서신만을 생각하지만, 저 사람들은 방송까지 포함하는 개념의 차이를 유의해야 한다. 방송이 통신에 드는 것은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대남, 대미 비방 방송을 할 때는 격앙된 가성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다. 반면에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김정일 동지께서는…”하는 방송을 할 땐 내용에 따라 한 없이 자애롭거나 장중한 어조로 바뀐다.

‘조선’이라는 북녘 월간 화보 4월호는 리춘희 방송원을 가리켜 ‘박력있고 호소성이 강한 쇠소리나는 목청의 성명·담화 발표로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공격하는 화술적 재능을 가졌다’고 소개한 것으로 전한다. 저 사람들은 이쪽 방송 어조에 맥이 없어 보이겠지만, 여기서 보는 저들 방송 어조는 어쩐지 좀 유치하다. 그나저나 리춘희 방송원의 대남 방송이 부드러워지게 되면 좋겠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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