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통이 치밀어 며칠째 잠도 못자고 있어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에서 30여년간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H씨(63)는 요즘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H씨는 “내 돈 주고 데려온 외국인근로자 때문에 왜 내가 수천만원이나 손해를 봐야 하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고용안전센터를 통해 데려온 베트남인 노동자 A씨(25) 등 2명이 농번기를 앞두고 일을 못하겠다며 갑작스레 임금을 올려달라고 한 것은 지난달 초.
일손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H씨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이들에게 월급 외에 시간당 3천770원을 추가로 챙겨줬지만 A씨 등은 그 이후에도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H씨가 일을 재촉할 때면 ‘목에 기름을 부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고 밭에 심어놓은 상추 등을 짓밟기도 했다.
결국 A씨 등은 지난달 말 900여만원의 임금만 챙겨 본국으로 도망갔고 채소를 길러 팔면서 생계를 꾸려온 H씨는 5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았다.
자동차부품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화성시 소재 D업체 사장 B씨(43)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채용한 태국인 등 근로자 3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수시로 공장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기계를 망가뜨리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월급을 올려줬지만 이들은 지난주부터 잠적한 상태다. B씨는 “이들이 억지를 부려도 당장 사람이 필요하다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최근들어 외국인근로자들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농가와 영세업체의 심리를 악용,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임금만 받아챙겨 달아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선량한 외국인근로자의 이미지까지 실추시키고 있다.
22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외국인근로자에 의한 피해호소가 6건이 접수됐으며 보상 방법 등을 문의하는 전화는 하루 평균 2~3통씩 걸려오는 등 외국인노동자에 의한 역피해 신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 등에는 이같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뚜렷한 규정이 없어 피해를 당한 농민과 업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고용안전센터에 근로해지 신청을 한 뒤 법무부에 신고해 당사자를 잡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본국으로 도망가기 때문에 실제 보상은 어렵다”라며 “농민과 영세업체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황신섭기자 hss@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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