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者의 덕목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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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최부잣집’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명가(名家)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옛말처럼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 법인데, 경주 최부자집은 무려 12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의 영예를 누렸다. ‘좋은 일을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게 바로 최부잣집이다. 이 집안의 부와 명예를 지탱해준 두 기둥은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의 가훈 ‘육연(六然)’이었다.

‘육훈’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마라,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과객은 후히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다.

이는 상생(相生)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호혜와 상호의존의 지혜다.

남은 나를 위해 있다는 상극(相剋)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게 ‘육훈’이다.

‘육연’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自處超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對人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無事澄然),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有事敢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得意淡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失意泰然)”다.

‘육훈’과 ‘육연’을 대하다 보면, 부자는 훌륭한 품격의 대인(大人)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진 자의 책임의식과 솔선수범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적 기반이 탄탄하다는 뜻도 된다. “(단순한) 부의 축적은 가장 저급한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사회를 위한 부의 환원이라는 숭고한 우상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말과 상통한다.

한국 최대 부자인 삼성가(三星家)가 특검을 받은 후 이건희 회장이 물러나는 등 경영쇄신안을 발표해 나라 안팎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병철 전 회장이 1938년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지 꼭 70년 만이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놓고 이견들이 많지만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이 순탄했으면 좋겠다. 경주 최부잣집의 ‘육훈’과 ‘육연’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르침을 무겁게 안겨준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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