管仲·晏子

‘안자(晏子)는 검소하고 관중(管仲)은 사치하였다. 그러나 환공(桓公)은 관중의 보좌로 육국의 우두머리가 되고, 경공(景公)은 안자에 의해 치국을 잘 도모하여 두 임금이 제(齊)나라의 번영을 이룩했다. 사기열전(史記列傳) ‘관·안전’에 나오는 말이다.

관중은 친구간의 두터운 신뢰관계를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에 나오는 사람이다. 그의 친구 포숙은 관중과 젊었을 적에 장사를 같이 했다. 그런데 관중이 지나치게 이문을 탐해도 이해했다. 친구가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여겨 양보했던 것이다. 먼저 벼슬길에 오른 포숙이 관중을 천거해 자기보다 더 높은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개의치 않았다. 관중은 말했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고, 나를 있게 해준 사람은 친구 포숙이다”라고 했다.

관중은 교역으로 부국강병케 하고 나라의 4대 덕목으로 예(禮)·의(義)·염(廉)·치(恥)의 기강을 확립했다. “주는 것이 얻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라고 설파했다.

안자 역시 재상을 지냈다. 겸손하면서도 신념이 강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어느날 안자의 마부 아내가 남편에게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다. “재상되는 안자는 다소곳한 모습인데 말을 모는 당신은 호들갑을 떠니, 이런 사람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마부는 크게 깨우쳤다.

‘사기열전’을 펴낸 사마천(司馬遷)은 이렇게 썼다. 군주의 아름다움을 조장하고 결점을 바로잡는 신하라야 참다운 군신지간이라면, 그같은 신하야 말로 곧 관중이라고 했다. 또 안자에 대해서는 주군 면전에 나아가서는 충언을 다 하고, 물러나 혼자가 되어서는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가를 돌아보는 현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관중은 부자인데 비해 안자는 가난하였다. 특이한 것은 관중은 누각을 가졌을 만큼 부자인데도 그를 힐난하지 않았고, 안자는 밥상에 반찬이 한 가지일 정도로 가난하였으나 그를 무능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형태는 달라도 둘 다 큰 인재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자들 사람인 것은 이미 다 안다. 가난한 사람은 눈씻고 봐도 없다. 욕먹는 저변엔 이런 민중의 정서가 깔렸다. 그러면 관중처럼 일이라도 잘해야 할 것인데 무능이 겹쳤다. 관중이나 안자같은 인물이 없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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