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楊花津)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가면 143명의 선교사들이 왜 우리나라 땅에 묻혔는지 느끼게 된다.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는 글은 독신으로 한국에 파송된 미 남감리회 여성 선교사 루비 R 켄드릭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그는 개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교 활동을 하던 중 한국에 온 지 8개월 만인 1908년 6월 급성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여덟의 나이였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는 H B 헐버트 선교사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헨리 아펜젤러의 맏딸로 25년 동안 이화여대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의 묘비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한다”라고 적혀 있다. 아버지 아펜젤러가 한국을 위해 헌신했는데 딸 아펜젤러까지 이화학당 교장까지 맡아 한국 여성의 권리와 사상 개혁을 위해 일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은 오래 방치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으나 2001년부터 공원화됐다. 묘원내 선교기념관 사용권을 둘러싸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와 주한 외국인들이 주축을 이룬 서울 유니온 교회가 한때 갈등을 겪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묻힌 공간이 비록 한때지만 한국 기독교계의 다툼 장소가 됐던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역은 예부터 경치가 아름답고 정자가 많기로 유명했으며 한말 역사의 변천과 함께 많은 흔적을 남긴 곳 중 하나였다. 즉 야소교도(耶蘇敎徒)가 박해를 당해 순교자들이 묻힌 곳이다. 개화의 선각자였던 김옥균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외국인선교사 묘원은 도심 속에 자연과 어울려 있어 학습을 하고 나들이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다. 묘원이 문화공간이자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묘원 관리를 맡고 있는 100주년기념교회 교육관은 양화진의 역사와 주요 선교사를 소개하여 많은 학생들이 찾는다. 누가 외국 선교사들을 이 땅에 오게 했을까.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사랑했던 것은 무엇일까./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