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항구’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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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 피리 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꽃 잡고 길을 물어 / 물에 어리는 물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 구름도 낯설은 영을 넘어서 / 정처 없는 단봇짐에 꽃비가 온다 /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바람을 앞세우고 / 유자꽃 피는 유자꽃 피는 항구 찾아 가거라.”

남해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의 ‘대지의 항구’다. 1940년 제작된 영화 ‘복지만리’의 주제가로 백년설이 불렀다. 지금도 애창되는 ‘흘러간 노래’ 중 하나다.

일제시대 만주로 간 동포들이 이국 땅에서 받는 민족차별과 나라 잃은 설움을 호소한 노래다. 그러나 가요 연구가들의 얘긴 다르다.

‘복지만리’란 영화는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은 일제가 조선 민중들을 만주 개척에 동원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며 ‘복지’는 ‘만주’를 뜻하는 것이란다. 일테면 친일가요인 셈이다.

북한에선 대지의 항구’를 그동안 “퇴폐적이고 반동적”이라고 평가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21일 북한의 대내방송인 조선중앙방송이 보천보전자악단이 부른 ‘대지의 항구’를 내보내면서 “애국의 뜻을 품은 양심적 문예인들이 조선인민과 중국인민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일제의 간악한 민족이간 책동에 맞서 1940년에 제작한 영화 ‘복지만리’의 주제가”라고 소개했다.

“우리 인민은 중국 인민과 손 잡고 일제의 식민지 예속과 민족이간 책동을 짓부수고 기어이 조국 해방을 이룩하고야 말 의지를 가다듬으며 ‘대지의 항구’를 널리 애창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일제 놈들은 이 영화(복지만리)를 제 놈들의 뜻대로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의 연출가를 체포해 갔으며 적들의 비인간적 행위는 우리 인민의 분노를 자아냈다”면서 “이 노래 한 곡에도 우리 민족의 피눈물 고인 수난의 역사가 비껴있다”고 덧붙였다. 남북의 평가가 이렇게 다른 건 비극이다.

어느 쪽 말이 사실인지는 후일 밝혀지겠지만, 똑 같은 대중가요를 놓고도 해석이 다른 것이 남북으로 분단된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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