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인가 사업주인가…다툼 10년 덤프·레미콘·굴삭기 등 특수 고용자
경기도내 건설노동자 수만여명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 덤프와 레미콘, 굴삭기 노동자로 불리는 일명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과 건설산업법 등 관련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사업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이같은 싸움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6~1998년 사이 한국레미콘공업협회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경영이 악화됐고, 이후 종전 정규직 등으로 일해 오던 레미콘 운전자들을 상대로 차량을 분화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현상은 곧바로 전국으로 확산됐고 레미콘 운전자들은 회사 소유의 차량을 개인이 구입, 운행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덤프와 굴삭기 운전자들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들 운전자들의 차량등록이 이뤄지면서 이로 인해 이들은 졸지에 노동자가 아닌 개별 사업주로 바뀌게 됐고, 이후 법이 정하는 노동자 범위에서 제외되면서 각종 차별에 시달리게 된 것.
17일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건설기계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도내 특수고용 노동자는 레미콘 5천720대, 덤프 6천56대, 굴삭기 1만2천841대(차량등록기준) 등 총 5만6천422대로 사업장 1만여곳에 1만~1만5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을 일반적인 범주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현재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의 차별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노동조합을 만들어 화주·운송업체들과 교섭에 나설 수 없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경기건설기계지부 차태인 사무국장은 “현행 근로기준법 2조는 분명히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사업장에 노동행위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보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까지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차별개선과 관계자는 “이들은 자신의 차량을 가지고 사업등록까지 마쳤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실효성 없는 정부정책, 끝나지 않는 싸움
정부는 지난 2006년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키 위한 건설기계 표준약관을 마련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지난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계약과 법정 노동시간 엄수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현재 도내 1만여곳의 건설 사업장 가운데 이같은 표준약관을 이행하고 있는 곳은 불과 1%인 100여곳에 지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표준약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올해에만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신고만도 현재 경인지방노동청에 무려 1만2천여건이 접수된 상태다.
특히 현행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일간의 근로시간을 휴게시간을 제외한 40시간, 하루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으나 실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1주일 60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정부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들의 끝이 없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전국건설산업연맹 이영록 정책국장은 “정부가 애초부터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으면서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며 “하루빨리 이들을 엄연한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올해초부터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하는 등 다양한 보호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로 인해 임금체불과 불법 하도급 계약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황신섭·권혁준기자 hss@kgib.co.kr
■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은…
정부가 이달부터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한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있으나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한정되는 등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 노동부와 전국건설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달 17일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 이달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50%로 일괄 적용되던 산재보험료 요율이 상시근로자수에 맞춰 1000인 이상 사업장은 ±50%, 150인 이상 1000인 미만은 ±40%, 30인 이상 150인 미만은 ±30% 등 개별실적요율이 적용된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레미콘 운전자와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등 4개 직군으로 한정하면서 현재 덤프와 굴삭기 운전자 1만여명은 형평에 어긋나는 처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같은 산재보험의 경우, 사업주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해야 하는데다 강제적용이 아닌 선택사안에 불과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주들이 단체상해보험으로 산재보험을 대체할 수 있어 실제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 여부도 미지수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도건설지부 이재만 사무장은 “그동안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인정치 않은 사업주들이 과연 산재보험에 가입하겠느냐”며 “게다가 덤프와 굴삭기 등 나머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적용대상에서 빠진 반쪽짜리 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다양한 직군의 특수고용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며 “대신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한 추가대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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