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억제’가 능사 아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내세워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건 잘못된 일이다. 지난 17일 강만수 장관의 주재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나온 정책이다. 노동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장관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최근 고용상황과 임금체결 동향을 점검하고, 아직 임금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사업장의 임금인상 억제를 유도하기로 했다. 정말 위기를 모르는 회의다. 물가급등과 고용부진으로 가계의 고통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노동부가 점검한 사업체 6천745곳 가운데 올해 상반기에 임금협상이 타결된 사업체의 임금 인상률은 평균 5.1%다. 한국은행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4.8%를 겨우 웃돌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물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며 하반기 임금인상 억제를 강조한다. 노동계의 희생을 강요한다.

물가는 하반기에도 가파르게 올라 가계의 실질소득을 더 갉아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위기관리 대책회의에서 가정용 도시가스 소매요금을 2.5% 올리기로 결정했다. 전기요금 인상안도 곧 확정할 방침이다.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인상만으로 소비자 물가는 0.6% 더 오른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2%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임금인상 억제를 강조하는 것은, 임금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그것이 다시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아주 다르다. 임금이 대폭 올라도 비싼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부 점검대상 사업체 가운데 상반기에 임금협상이 타결된 사업장은 26.7%다.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은 13%, 한국노총 산하 사업장은 20.4%만이 타결됐다. 6월 물가상승률이 5.5%에 이른 점을 참작하면 앞으로 협상을 할 사업장의 임금 인상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노동자를 설득할 어떤 유인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보다는 부유층에 대한 감세 등 거꾸로 가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아무 대책 없이 노조 파업 등에 대한 강경대응 등 고통분담을 노동자들에게만 지워선 안 된다. 임금인상 억제를 계속하면 노동자들이 견뎌내기 어려워지는 내년엔 갈등이 폭발한 우려가 크다. 노동자의 임금은 소폭이라도 인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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