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이 누렇다. 오곡백과가 익었고 또 익어간다. 풍요를 품은 대자연의 창고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땀 흘린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흐뭇하다. 수확의 계절이다. 그런데 농심을 피멍들게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수확을 도둑맞기 때문이다.
집곡식 도둑은 있어도 들곡식 도둑은 없었다.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도 그랬다. 예컨대 벼이삭을 베어 탈곡한 벼를 멍석에 깔아 논 가운데서 말리는 것은 아직 들곡식이다. 다 말린 벼를 가마니에 담아 광에 옮겨두면 비로소 집곡식이 된다. 들에서 말리는 이런 들곡식을 도둑맞는 일은 예전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벼를 콤바인으로 베어 자동 탈곡된 벼가 자루에 담기기 때문에 기계적인 화기로 건조시키지만, 한편 들곡식으로 말렸다간 도둑맞기 십상이어서 햇볕에 말리지 못한다.
한데, 들곡식 도둑도 아주 나쁜 게 있다. 고추 농사에 병충해가 심해 김장고추값이 폭등하던 해엔 고추 도둑이 심했다. 그런데 밭에서 붉은 고추만 따가는 게 아니다. 아예 고추 줄기를 뿌리 채 뽑아간다. 타이탄 트럭을 대놓고 뽑아낸 고추 줄기를 무더기로 싣고 도망치는 것이다.
요즘엔 인삼밭 도둑이 또 극성이다. 근래만 해도 이천 포천 등지에서 발생됐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특히 포천경찰서에 붙잡힌 인삼밭 도둑은 기업형이다. 한수 이북의 인삼밭에서 수십차례에 걸쳐 1억6천만원 상당의 인삼을 주로 6년생 이상 짜리로 뽑아 훔쳤다는 것이다.
인삼밭 도둑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말 못된 인간들이다. 기업형의 이들은 일당이 모두 70대들이다. 들곡식 도둑의 금기를 모를 나이도 아닌 위인들이 그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용서받기가 어렵다. 인삼은 곡식은 아니지만 땀흘린 농작물인 점에서 들곡식과 같다 할 것이다.
들곡식에 손대는 몹쓸짓은 남의 농사를 송두리 째 망치는 것이어서 죄질이 나빠도 아주 극악하다. 그렇다고 밤낮을 도와 지켜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확기를 맞은 대자연의 창고에 검은 손을 대는 것은 천리를 어기는 것이어서 천벌을 면치못할 것이다.
들곡식이 무르익는 풍성한 이 가을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계절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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