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칼라 농부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감사원이 공개한, 지난해 실시된 ‘쌀 직불금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서울·과천에 거주하는 공무원 520명과 공기업 임직원 177명이 2006년분 쌀 직불금을 수령했다. 이 지역에서 쌀 직불금을 수령한 4천662명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 이외에도 금융계, 변호사 등 전문직, 회사원, 직업불명 등 비농민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4천520명(96.9%)은 벼를 수확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쌀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직불금을 불법 수령했다는 의혹이 안 생길 리 없다.

2007년에도 부정 수령자가 12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공직자가 4만여명이나 돼 충격이 더욱 크다.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을 공직자들이 가로챈 셈이다. 농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이 농촌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동안 정부는 농업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할 것은 다해왔다고 공언해 왔는데 공직자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은 농정의 사기이며 변죽만 울린 꼴이다. 지금 농촌은 고유가에 비료값 인상 등으로 풍년농사를 지었어도 시름만 깊어가는 중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시행됐지만 쌀 직불금 문제는 여야 모두에게 양날의 칼이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고위 공직자들의 부당한 직불금 수령 사실이 더 드러나면 한나라당의, 노무현 정부에서의 부당 수령 사실이 더 적발되면 옛 여당이던 민주당의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어서다.

그런데 이 마당에 청와대가 “(현행법상 쌀 직불금은 위탁 영농 대상자도 수급대상이 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을 잘못 만들어 이(봉화) 차관 같은 사람도 직불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한 건 부적절하다. 더구나 “(이 차관과) 비슷한 경우가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에도 많이 있다. 따라서 위법이라기보다 도덕성의 문제”라고 선을 그은 것은 ‘내 식구 감싸기’로 더욱 당치 않다.

불법을 저지른 공무원이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당 이득을 환수하고, 그 정도가 심하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국민감정을 모르는 그야말로 ‘소통부재’의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는 현 고위 공직자 중 직불금을 신청한 인사 명단을 당장 공개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