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연구와 바른말 보급에 앞장서 온 ‘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설립됐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큰사전’ 편찬과 발행 등 한글 다듬기에 지대한 기여를 한 국내 유일의 민간 한글 연구 단체다. 한글학회 운영 재원은 1977년 국민 성금 등으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지은 5층짜리 ‘한글회관’ 건물 임대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건물의 80% 이상을 빌려주고 받는 월 3천만여 원의 임대료와 일부 연구사업에 대한 지원금이 수입의 전부다. 그나마 임대료 수입은 사무실 운영비와 11명의 한글학회 직원 급여로 대부분 사용된다. 이 건물의 5층 일부를 사용하고 있는 한글학회는 도서관이나 연구실조차 없어 중요한 한글 관련 자료 및 고서들이 사무실 바닥에 쌓여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보조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에 6억5천만 원의 기념사업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나 겨우 1억8천만 원만 배정받았다. 한글을 경시하는 정책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올 한 해 동안 영어사업에 썼거나 쓸 예산이 한글사업에 들이는 예산의 15.6배에 이른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올해 영어교육사업에 들이는 예산은 1천861억9천52만 원이나 된다. 하지만 한글교육 및 문화 육성에 들어가는 돈은 119억2천925만 원에 불과하다. 지자체 5곳은 아예 한글사업에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대기업들도 한글을 홀대하긴 마찬가지다. 한글학회가 올해 초 한글 전용 연구실과 도서관 용도 등으로 사용할 ‘한글학회 100돌 기념관과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국내 100대 기업에 후원금을 요청했지만 후원금은 커녕 문의 조차 없었다.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 가운데 으뜸이 우리 말과 글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또 하나의 독립운동이었다. 한글학회 회원들은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데 목숨을 내걸었다. 그들이 한글을 보전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찌 됐을 것인가. 한글에 대한 투자는 우리 민족 유산을 지키는 위대한 사업이다. 한글학회는 물론 한글연구 기관에 국고를 아끼지 말아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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