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아래 공터 - 김석규

소리 소문도 없이 가을이 오고

산책로에서 만난 이의 주름살에도 귀두라미가 앉아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또 가을은 가고

기다리지 않는 데도 겨울이 올 것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 읽어야 할 책을 덮고

이제 안경의 도수를 조금 더 높여야 할까보다.

긴 밤 잠 못 들어 일어나 앉은 무릎 아래

지나가는 바람이 시려오는

이 나이에

돌아보면 잘 못한 일이 한 두 가지도 아닌데

죄밑이 되어 잇금도 안 들어갈

사랑한다는 말도 부질없어라.

사랑했다는 말도 다 부질없어라.

먼 훗날 길모퉁이에서 설면해지면 어찌할까.

너무 젊어 탈이었나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희망으로

세상을 얼마나 배고프게 건너 왔는가

소리 소문도 없이 가을만 오고

<시인 약력> 1941년 경남 함양 출생 /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풀잎’ ‘적빈을 위하여’ ‘청빈한 나무’ 등 다수 / 경상남도 문화상·현대문학상·윤동주문학상 등 수상 / 부산시인협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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