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起와 武后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 오기(吳起)편에 나오는 고사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이다. 병법에 능했다. 그가 서하(西河)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다. 서하는 지금 중국 협서성 황하의 서쪽 일원이다. 위나라 왕 무후(BC 386~371재위)와 함께 서하에 배를 띄우고 일행이 물결따라 가던 중 무후가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훌륭하다 아, 험준한 이 산하의 요새여! 이것이야말로 위나라의 보배로다”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오기는 대답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님의 덕행이지 산하의 험고함이 아닙니다”라고 왕의 감탄을 부정했다. 무후는 안색에 노여움을 띠었다. 그러나 오기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옛날에 삼묘씨(현재의 호남·호북·강서성에 할거했던 민족)의 나라는 동정호가 왼쪽에 있고 팽려호가 오른쪽에 있는 험고한 땅이었으나 덕과 의를 닦지 못하여 우 임금이 이를 멸망시켰습니다. 하왕조 걸왕의 거처는 황하와 계수가 왼쪽에 있고 태산 화산이 오른쪽에 있고 이궐(오늘날 낙양 남쪽의 단애)이 남쪽에 있고 양장산의 험고함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그의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은왕조의 탕왕에게 방벌되었습니다. 또 은의 주왕은 맹문산이 왼쪽에 있고 태행산이 오른쪽에 있고 대하(황하)가 그 남쪽을 지나고 있었으나 정치를 하는데 덕이 없어 주왕조의 무왕이 그를 죽였습니다”

오기는 한참동안 이렇게 말하고는 임금에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었다. “말씀드린 이런 사실을 근거로하여 관찰해보면 나라의 보배는 인간의 덕에 있는 것이지, 산하가 험고한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아니하면 이 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로 간언을 마쳤다. 무후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오기의 손을 잡으며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400여년 전의 고사다. 하지만 세상사 이치는 지금도 같다. 오기와 무후 중 누가 더 현인(賢人)일까, 임금의 말을 거역한 간언의 용기는 실로 가상하다. 하지만 자신을 거역한 충언을 받아들인 무후는 역시 임금답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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