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달-이운기

순이네 할아버지는 새벽마다 동네를 돌았다.

개똥망태를 메고 동네 한 바퀴 돌아

습관처럼 원두밭으로 갔다.

순이네 할아버지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순이네 개굴참외, 먹사과, 김막가, 나이롱 참외는

개똥을 먹고 자란다고

아이 더러워, 아이 더러워

동네 아이들은 순이를 놀려댔지만

어른들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일등품이라 했다.

어쩌다 팔지 않는 등외품 하나씩

동네 조무래기들에 나눠 주고

원두막 오줌통에 오줌을 누게 했다는

순이네 할아버지가 개똥망태 메고

동네 한 바퀴 돌았을 시간

새벽달 하나 파란 하늘에 떠있다.

순이도 할망구가 되었다는 지금에도

어디론가 슬그머니 떠났다 돌아온

옛날의 낯익은 얼굴처럼

<시인 약력> 경기도 안성 출생 / 문예비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바람은 능선 위 구름을 쓸고’ 등 다수 / 구리여자고등학교 교감·남양주시 와부중학교 초대 교장·성남시 늘푸른 중학교 초대 교장·문비문학 동인회 3·4대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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