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했다. 백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확대하면 ‘백견이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백번 보아도 한 번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듣는 것보단 직접 보고, 보는 것보단 몸소 실천해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약 1년 전이다. 서울고법 형사부 판사들이 사건 현장을 검증했다. 화성시의 한 편의점에서다.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은 30대 남자다. 범인은 범행 당시 얼굴에 팬티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증거는 점원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진술뿐이다. 물론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했다.
재판부의 현장검증은 그냥 둘러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판사가 직접 똑같은 문양의 팬티스타킹을 뒤집어 썼다. 범행 시각과 같은 시간, 범인과 점원이 서 있었던 똑같은 거리, 점포 실내 조명도 똑같은 조명으로 하여 현장 재연을 실행했다.
판사 세 명이 서로 번갈아 범인이 되어 팬티스타킹을 뒤집어 쓰는가 하면 또 점원이 되어 얼굴을 확인해보곤 했다. 결론은 세 판사가 모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 얼굴을 알아봤다는 점원의 진술은 지레 짐작일 뿐,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결났다. 그 피고인에겐 유죄의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됐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재판부가 점원의 진술만 믿고 현장검증을 안 했더라면, 꼼짝없이 특수강도의 죄인이 될 뻔 했던 것을 실체 규명에 진력한 재판부의 노력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모면한 것이다.
경기도 안성 미산골프장 승인 취소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잘못된 근본은 허위보고다. 그러나 허위보고에 속아 넘어간 책임 또한 없다할 수 없다. 어떻게 일일이 보고내용을 다 따질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미산골프장 문제는 사태가 심각했던 중대 사안이다. 실사 내용을 거듭 확인해봐야 하는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보아야 된다.
무명 시민의 재판을 위해 서울서까지 판사들이 현장에 내려와 몸으로 하는 검증을 해보였다. 미산골프장은 코 앞이다. 현장 한 번 안 나가 본 경기도의 안일함이 화근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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