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임금이 과거 응시자 중 최종 합격자 33명에게 당대 국가 과제에 대한 방책을 직접 물었다. “지금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국가 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그대가 왕이나 재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름하여 ‘책문(策問)’이다. 책문은 인재 등용을 위한 통과의례만은 아니었다. 왕은 당대의 고질병을 솔직히 드러내 대책을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법의 페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세종대왕이 물었다. 성삼문은 법을 고치기 전에 임금의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삼문은 광무제를 예로 든다. 광무제는 전한(前漢) 말기 군주는 약한데 신하는 강한 형국이라며 삼공(三公·옛 중국 최고의 관직)의 권한을 빼앗았다. 그러나 권력이 환관에게 돌아가 조정이 혼란해진다. 성삼문은 반드시 법을 뜯어 고쳐야 이상정치를 이루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또 사람을 쓰는 것은 국가의 큰 권한이다. 재상에게 맡기되 자질과 이력을 따지는 일은 재상을 번거롭게 하니 전조(銓曹·인사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재상에게 맡기면 재상이 노고를 이기지 못하게 되고, 두 가지 일을 오로지 전조에 맡기면 전조에 권한이 지나치게 편중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신숙주는 언로(言路)를 열어 직언을 받아들인 후 날마다 대신들과 폐단을 고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형은 지나친 개혁은 패망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일을 맡기지 않고 대신들의 자리만 채워 백성에게 근심과 걱정을 끼치지 말라고도 했다.
광해군이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인재등용, 세제개혁, 토지정비 등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유생 임숙영이 되물었다. “임금이 싫어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풍조를 좇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을 숨길 순 없습니다. 어찌 속된 선비처럼 왜곡된 말만 따라하며 인재선발을 맡은 관리의 기준에만 부합하려고 힘써, 전하의 은총을 훔쳐 임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 입니다. 왜 자신의 실책을 말씀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절대 왕권 시절에 정말 대단했다. 그 옛날 군주의 길을 밝혀준 명신(名臣)들의
직언이 지금은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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