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호랑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는 예부터 많은 얘기를 남겼다. 선인들에게는 외경스런 동물이었던 것이다.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고 했던 것은 산신령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호환은 산촌에 살거나 산길을 가야하는 나그네에겐 항상 두려웠던 횡액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거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등 호랑이를 둔 속담도 많고, ‘호랑이가 담배먹던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호랑이에 얽힌 옛 이야기도 많다. ‘호질문’(虎叱文)은 실학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나오는 것으로, 도덕군자란 자가 과부와 내통하다가 호랑이를 만나 톡톡히 꾸지람을 듣는 내용은 당시 부패한 유생들의 위선을 빗댄 것이다.

한국 호랑이가 백두산 호랑이로 유명한 것은 백두산 원시림에 가장 많기도 했으나, 단군신화의 장소가 태백산이었기 때문이다. 태백산은 지금은 경북 봉화, 강원 삼척에도 있지만 원래는 백두산의 옛 이름이다.

학계에 의하면 한국 호랑이는 1924년을 마지막으로 한반도 산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고됐다. 도로교통의 발달 등이 생태계 변화를 가져온 탓으로 알려졌으나, 분명한 원인은 아직도 미궁이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가깝기도 했던 한국 호랑이는 몇몇 동물원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뿐, 야생에서는 볼 수 없는 전설의 동물이 되고 말았다.

서울동물원 등 국내에 현존하는 한국 호랑이는 52마리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호순이’, 미국 미네소타 동물원에서 4마리를 수입한 한국 호랑이 등이다. 지난해 6월엔 남한 출신 암컷 ‘성주’와 북한출신 ‘코아’ 사이에 3남매의 아기 호랑이가 태어났다.

국내 한국 호랑이가 얼마 전 국제적인 호랑이 혈통 족보에 올랐다.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는 세계의 호랑이 혈통 족보를 통합 관리하는 기구다. 이 족보에 오르려면 유전자 분석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혈통 확인 절차가 까다롭다. 한국 호랑이가 이 같은 절차를 모두 통과한 것이다.

한국 호랑이는 위풍이 특히 당당한 면모에 털 색깔이 진하면서 윤기가 나는 게 특징이다. 혈통의 세계적 정통성을 인정받은 국내 호랑이는 각각 고유번호를 지녀 국제사회의 보호를 받는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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