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승인 정1품의 1년치 녹봉은 쌀과 명주 등을 모두 합쳐 쌀 100석(섬) 정도였다고 한다. 쌀 100석이면 현재 가격으로 2천880만원이다. 당시 정승인 현 국무총리의 연봉이 1억5천만원 정도니까 가치 차이는 5배가 난다.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沈淸)은 몸값으로 공양미 300석을 받았다. 1석이 144㎏이니까 300석이면 4만3천200㎏이다. 이를 80㎏ 쌀 한 가마니로 환산하면 540가마니가 된다. 지금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이 16만원 정도니까 공양미 300석의 지금 가격은 8천640만원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몸값도 쌀로 계산할 정도로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쌀은 가장 확실한 환금가치를 지닌 현물화폐였다. 조선시대엔 대부분 왕이 쌀을 하사하고 세금을 거뒀다. 조선 600년의 실물경제는 쌀의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쌀의 가치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만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8·15 직후 전문대학 졸업자의 한달 봉급은 당시 돈 400원 선, 이 돈으로 쌀 한 가마니와 쇠고기 한 근을 살 수 있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쌀 한 가마니의 가치는 지난해 기준으로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봉은 월 200만원 선, 이 돈이면 쌀 열두 가마니를 사고도 남는다.
쌀의 가치 하락은 대학교 등록금과 비교해 보면 더 확연하다. 1970년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은 5천400원, 당시 사립대 1년 등록금이 10만원 선이었으니까 쌀로 환산하면 18가마니 정도였다. 1980년엔 26가마니, 1990년에는 36가마니, 2008년엔 무려 75가마니로 쌀의 교환가치 추락은 그 끝을 모를 정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장에 쌀 한 됫박(2㎏)을 가지고 나가면 닷새치 장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이 돈으론 고등어 한 손 사기 어렵다.
지난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서 쌀이 남아 걱정을 한 기간은 10년도 되지 못한다. 지금 쌀이 남는다고 방심하다간 정말 큰일 난다. 쌀 한 가마니의 가치는 농업인의 열정과 그 농업인이 맺은 사회·역사적인 내재가치로 평가돼야 한다. 다른 물품에 비해 쌀값이 너무 싸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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