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쓴 글 - 정 복 선

아픔도 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이 아픔은 꽃이 되었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몇십 년 걸려 돌아올 거리를

천만 리나 헤매어 다녔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고 숨 쉬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의 몸뚱어리와 날카로운 발톱

바람의 머리칼과 타오르는 눈빛 그리고 들키지 않게

둘러쓰는 바람의 망토까지도 샅샅이 뒤졌기에

바람, 하면 긴 숨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본 것은 안 본 것으로 되돌릴 수가 없지요

있던 것은 영원한 없음으로 보내버릴 수도 없습니다

왜 그토록 오래 아파야 했는지

왜 그토록 덧문 흔들어댔는지

핏방울마다 피어난 꽃숭어리

그것이 그대가 쓴 혈서입니다

<시인 약력> 성신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 ‘시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시간의 칼은 녹슬고’, 영어시집 ‘Sand Relief’’ 등 다수 / 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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