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과 함께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남북 화해·협력 시대의 물꼬를 텄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재정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이뤄진데다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맞춰 북한이 조문단까지 파견, 남북 관계개선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국민적 기대감마저 한껏 고무된 상황이다.
하지만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개척하고 이끌어간 주역이자 큰 별이었던 김 전 대통령이 그 결실의 과제를 후대에 남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6명으로 구성된 북측 조문단은 지난 1일 김포공항에 도착,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조문한 뒤 23일 평양으로 돌아갔다.
북한 조문단은 이날 오전 9시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협력 진전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북한 측의 조문에 감사의 뜻을 전한 뒤 남과 북이 어떤 문제든 진정성을 갖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약 30분간의 짧은 만남이었고 남북 현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이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북 정상간 간접 대화가 이뤄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남북관계에는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 이행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데도 북한이 이 대통령과의 만남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향후 북한의 대남 정책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북한은 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평양을 방문하자 개성에 억류한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를 석방했으며 현 회장과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다음날 곧바로 조전을 보내왔으며 최고위급으로 구성된 조문단도 파견했다. 조문단이 서울에 도착한 당일에는 육로통행 제한 등을 담은 12·1조치도 해제했다.
북한이 앞으로도 대남유화책을 구사하며 남북관계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30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가 북한에 예인된 ‘800연안호’ 선원 4명의 송환도 곧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아울러 대한적십자사가 이날 북측 조선적십자사에 추석 이산가족 상봉 협의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오는 26∼28일 금강산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 2007년 10월 이후 2년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동안 경직됐던 남북화합의 기틀을 다시 한번 마련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박수철기자 scp@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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