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자객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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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刺客)은 사람을 몰래 찔러 죽이는 사람이다. 보통 남을 암살하는 잔인한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지만 역사에 이(利)보다 의(義)를 중시하는 자객도 보인다. 사마천(司馬遷)이 조말, 전제, 예양, 섭정, 형가 등 다섯명의 자객을 ‘열전’에 올린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야당 민주당이 압승한 8·30 일본 총선거에서 이른바 ‘백주의 검투사’로 불린 ‘미녀 자객’들이 여당 자민당 거물들을 무참히 제거했다. 민주당은 선거전략으로 자민당 거물이 출마하는 선거구에 ‘미녀 자객’을 집중배치, 정계를 쥐락펴락했던 자민당 원로·중진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대행이 선발한 이들 미녀 자객들은 한결같이 미모를 갖췄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후쿠다 에리코(28)는 나가사키(2구)에서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68) 전 방위상을 제압했다. 아나운서 출신의 아오키 아이(44) 민주당 전 참의원 의원은 도쿄(12구)에서 연립여당 공명당의 오타 아키히로 대표를 쓰러뜨렸다. 에바타 다카코(49)는 도쿄(10구)에서 자민당의 고이케 유리코(57) 전 방위상을 꺾었다.

또 다른 미녀 자객 고바야시 지요미(40) 전 의원은 홋카이도(5구)에서 자민당의 마치무라 노부타카(64·8선) 전 관방상을 물리쳤다. 중의원 비서 출신 다나카 미에코(33)와 후지TV 출신의 미야케 유키코(44)는 총리를 지낸 자민당의 원로 모리 요시로(72)와 후쿠다 야스오(73)를 상대로 개표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미녀 자객들의 예리한 칼날 앞에서 노정객 두 명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나카 미에코와 미야케 유키코는 지역구에선 석패했지만, ‘패자부활전’ 성격인 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돼 자민당 원로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미녀 자객’들의 활약상에 고무받은 건 일본 민주당만이 아니다. ‘일본 민주당’이 54년만에 정권을 차지하자 당명이 같은 ‘한국 민주당’이 덩달아 “일본 국민은 새로운 정권을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논평을 내는 등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30여개월 뒤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예감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희망은 자유이지만 혹 한국 민주당도 일본 민주당처럼 ‘미녀 검객’들을 총동원하자는 당론이 나올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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