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귀국 동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도 나라를 빼앗긴 상흔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일본이 2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우리 한국인 청·장년들을 도처의 강제노역장에 징용으로 끌어갈 때, 끌려간 사람들이 사할린 귀국 동포다. 그 무렵은 사할린이 일본 땅이었으나 1945년 전쟁에 패하면서 다시 러시아(소련) 땅이 돼 돌아오지 못하고 발이 묶여 버렸다.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영토인 것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강점했던 것이다.
사할린에서 낳은 자녀들과 생이별하고 오직 고국산천이 그리워 맨몸으로 돌아온 것이 사할린 귀국 동포다. 그러나 노환이 겹친 이들의 생활은 정부의 보조가 있긴 하지만 어렵기만 하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이 안산시 상록구 ‘고향마을’이다.
사할린 귀국 동포의 ‘고향마을’을 돕는 익명의 독지가가 있다. 얼굴을 몰라 ‘홍길동’으로 불렸다. 그 ‘홍길동’이 누구인가를 알게된 보도 내용이 심금을 울린다.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고향마을’에 익명으로 추원한 금액이 무려 3억3천만원이라니, 매월 275만원 꼴이다. 자신의 집에 갖다준 생활비가 월 150만원일 적도 있었다니, ‘고향마을’ 사람들을 위한 성심이 정말 대단하다.
나눔의 사회는 꼭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을 갖게 한다. 남에게 베푸는 나눔은 물론 돈이 있어야겠지만, 그보단 마음의 여유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돈의 여유가 아무리 많아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나눔에 인색하다. 반대로 돈은 적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나눔에 빛이 난다. 더욱이 ‘홍길동’은 자신을 숨겨왔다.
지난 10년 동안 감춰온 얼굴이 알려지게 된 것은 ‘고향마을’ 회장 등의 간곡한 권유에 의해서다. 최만규씨(55)가 ‘홍길동’의 실명이다.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에서 장어집을 하고 있다. 옥호가 ‘힘찬하루’다. 지난 주말에 ‘홍길동’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고향마을’ 사람들을 사업장에 초청하기도 했다.
듣건대 최만규씨 또한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고향마을’을 돕는데 그간 남모를 고초가 많았을 것이다. 그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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