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 기념관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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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沈熏)의 ‘상록수(常綠樹)’는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같은 해 9월10일부터 1936년 2월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돼 일본강점기 시절 농촌 계몽과 문맹퇴치 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고등농업학교 학생인 박동혁과 여자신학교 학생 채영신은 모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우수대원으로 뽑혀 보고회에서 감상담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을 지키러’ 내려가기로 약속한다. 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청년회연합회 특파로 경기도 청석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샘골)로 각각 내려가 농촌사업의 기초작업에 들어간다.

두 사람은 각자의 근황과 사업의 진행 과정을 편지로 알리며 서로 의논한다. 동혁, 영신의 동지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3년쯤 지나 후진에게 일을 맡길 수 있을 때 혼인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역경에 휘말리게 된다. 영신은 과로와 영양실조로 몸이 점점 쇠약해지다가 샘골강습소 낙성식장에서 하객으로 초대된 동혁이 보는 앞에서 맹장염을 일으켜 쓰러진다. 동혁은 동혁대로 악덕지주 강기천의 농간에 휘말리다가 투옥된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영신은 서울 연합회의 주선으로 일본 요코하마로 정양 겸 유학을 떠나나 곧 돌아온다. 다시 청석골에서 농촌운동에 몰두한 영신은 각기병에 맹장염 재발로 숨을 거둔다. 출감한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알고 비탄에 잠기지만 곧 두 사람의 몫을 해낼 것을 굳게 맹세한다. 소설 ‘상록수’는 농촌운동가의 희생적 봉사와 민족주의, 종교적 휴머니즘, 저항의식을 고취한 명작이다.

채영신은 실존인물 최용신(崔容信·1909~1935)의 소설 속 이름이다. 안산시 상록구 해빛나길 56번지(본오3동 879-4)에 있는 ‘최용신 기념관’(031-481-3040)에 가면 손경숙 문화재 해설사의 안내로 최용신 선생의 눈물겨운 생애와 행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최은희(채영신)·신영균(박동혁) 주연의 영화 ‘상록수’(1961년 신상옥 감독)를 요약한 영상물은 최용신 선생의 민족혼, 애국심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최용신 선생 묘가 기념관 아래 있어 더욱 숙연해진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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