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심 도로를 걸을 때 약간 구린 냄새가 난다.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에서 나는 냄새다. 열매가 으깨져서 보도를 조금 지저분하게 만든다. 도심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는 나무이지만 냄새를 풍기는 단점을 지녔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에 은행나무의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는 방법과 열매를 맺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지 등을 묻는 지방자치단체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암수 딴 몸인 은행나무는 수나무의 꽃가루가 날려 암나무의 꽃에 수정되면 열매를 맺는다. 결국 열매가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수나무의 꽃가루가 암나무의 꽃에 닿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암나무의 꽃에 화학 처리를 해 수나무의 꽃가루가 오더라도 수정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란다. 암나무의 꽃에 일종의 ‘화학 코팅’을 하는 방법이다. 기술적으로야 가능하지만 인력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기 어렵다. 또 다른 방법은 수나무로만 가로수를 심는 일이다. 암나무만 추려내 먼 곳으로 옮겨 심고 빈 자리에 수나무를 심는다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 수나무와 암나무를 서로 마주보지 않게만 심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꽃가루는 바람을 타고 가기 때문에 주위에만 있다면 어떻게 심어 놓느냐에 상관없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가로수 28만3천 그루 중에서 은행나무가 42%다. 서울처럼 전국 지자체들도 은행나무를 시목(市木)·도목(道木)으로 지정한 곳이 많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각광받는 것은 공해나 병충해에 강하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 빨리 자란다. 그런데 근래 주로 은행나무 주변 상인들이 민원을 제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냄새가 날 때는 좀 그렇지만 도시 미관으론 은행나무만한 것이 없다. 봄, 여름 싱그러운 녹음과 그늘을 선사한다. 가을엔 회색 도심을 샛노랗게 물들여준다. 가을 한때 잠시 불편함은 감수할 만하다. 지자체들이 은행 열매를 빨리 수거하는 일도 한 방법이다. 도심에서 은행나무 단풍을 구경하는 건 행복이다. 가을의 정취, 낭만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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