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이란 게 나왔다. 4천389명의 명단이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란데서 펴냈다. 이엔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관련 인사들이 끼어 있다. 1979년에 투옥된 공산주의 지하조직이었다. ‘친일인명사전’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8억원을 국비로 지원해 나오게 됐다.

 

1905년 을사늑약을 지탄한 ‘시일야방성대곡’의 사설을 쓴 황성신문 장지연 주필을 비롯, 대한민국 건국후 국가 발전에 기여가 큰 김성수 부통령, 박정희 대통령 등 많은 인사들을 친일파로 분류했다. 친일 행적의 사실도 수록했다.

 

문제는 분류의 관점이다. 일제 강점 36년은 나치 독일이 2차대전 때 프랑스를 일시 점령했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성수의 경우, 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글을 문제 삼았다. 명의를 도용 당했던, 본인이 기고했던 그런 글이 나간 것은 일제 말기다. 그 이전의 저항운동은 이미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 같은 글이 있었던 것은 물론 불행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된다. 당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지금의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폐교되고 없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하에 살면서는 그들의 강요를 최소한으로나마 받아들이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식민지정책이었다. 잔학하고 교활했던 식민지 정책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지금의 눈으로 친일을 재단하는 것은 옥석을 구분치 못하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그래도 그 같은 관점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기왕 만들었다면 제대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좌파 인사는 죄다 빼고 우파 인사만 수록한 것은 의도적 편향이다. 예컨대 광복 전후에 좌파운동을 한 여운형 역시 학병 권유를 하고, 심지어는 8·15 직전 일본 총독부로부터 치안권을 인수받은 친일 행각을 벌였는데도 제외됐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기념식 자리에선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태극기에 경례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례를 거부, 이른바 민중의례를 한 자체가 이들의 ‘친일인명사전’이 어떤 성격인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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