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6·25 전후 젊은 세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얘기가 6·25 얘기다. 전쟁의 참상을 듣기 싫어하는 게 아니고, 먹을 게 없어 고생했다는 얘길 싫어한다. 전쟁후 1960년대 중반까지 10여년동안 미국 구호물자에 의존해 살았다는 얘기도 듣기 싫어한다. 얘길 해봤자 귓등으로 넘긴다.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쟁 중의 주먹밥은 그래도 양반이다. 미군부대 구정물통을 뒤져 건져낸 건더기를 끓여 먹었던 것이 부대찌개의 원조다. 해마다 겪는 봄철의 보릿고개 말고도 양식이 귀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보는 것이 더 바랄 수 없는 소원이었다. 그 무렵에 없는 사람들을 목숨 잇게 한 것이 미국 480 잉여양곡이었다. 자국의 양곡 수급상 태평양에 버려야 할 밀이나 밀가루를 원조물자로 보내온 것이다. 그냥 주어도 가져올 힘이 없어 실어다 주곤 했다. 원조물자, 구호물자라고도 했던 미국 물자는 480 잉여양곡 말고도 옷가지에서 과자류까지 갖가지였다. 이같은 가난을 털어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들어서다.

 

한국이 오늘 유엔개발계획(UNDP)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이젠 원조를 하는 시혜국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 온 헬젠 클라크 UNDP 총재는 “20세기와 금세기를 통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신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의 근면성,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한 슬기로운 발전 전략, 놀라운 기술 학습력이 오늘과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이적인 발전 스토리를 교훈 모델로 전 세계에 파급시키겠다고 했다.

 

전후세대의 젊은이들이 찌든 가난속에 살았던 전전세대의 얘길 듣기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다만 국제사회의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바뀐 공식 입장의 전환기를 기해 과거를 기억해둘 필요는 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라고 돌아보면 불평과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다. 그러나 우리는 발전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대한민국이여! 더욱 큰 영광이 있으라!! /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