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죄

형법의 혼인빙자간음죄가 헌법상의 남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56년만에 폐기됐다. 헌재 판결은 정부 부처인 여성부의 공식 견해를 받아들인 것으로, 혼빙죄는 여성 비하 라는 것이 여성부의 의견이었다.

 

당초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죄목이 이젠 여성 비하로 판단되게 이른 것은 세태의 변화다. 여성이 굳이 그 같은 죄목의 보호를 받아야 할만큼 약한 존재도 아니고, 성적 자기 의사 결정에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해석이 위헌의 요지다. 이엔 예컨대 외간 남자에게 손목잡혔다 하여 자진한 수절과부에게 열녀문을 세워주던 조선시대와 다른 시대적 변화의 배경 또한 깔렸다.

 

혼빙죄는 범죄의 성립 요건에 논란이 적잖았던 죄목이다. 처음에는 혼인할 의사가 있었으나, 중간에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 혼빙죄 남성이 흔히 내건 상투적 방어였으므로 처음부터 계획적 위계를 기도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1955년 한국판 카사노바였던 ‘박○○사건’은 댄스홀에서 만난 미혼여성 70여명과 성 관계를 가진 사건으로 여대생 등 고위층 자녀들이 포함됐었다. 이에 당시 권영순 서울지법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시한 것이 “법률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貞操)만을 보호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조란 말 자체가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일방적 굴레처럼 들리게 된다.

 

물론 이엔 사회적 시(是)와 비(非)가 있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6대3으로 위헌정족수인 3분의 2를 가까스로 채웠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3명이 사회질서 확립을 위해 혼빙죄의 필요성을 인정, 위헌이 아닌 것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견해 역시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엔 ‘남성의 위계에 의한 성 편취는 자유로운 성적 결정을 넘어선 반사회적 행위로 국가의 형벌권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바가 있다. 같은 헌법기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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