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직 상실 기준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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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 좋지 않은데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공직선거법상 당선무효벌금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모양이다. 벌금 100만원 이상인 기준은 너무 가혹해 300만~500만원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속내를 비친다. 국회의원 당선인이 선거 범죄로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하는 공직 선거법 264조는 돈 선거, 부정선거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치권이 앞서서 1994년 3월에 마련한 기준이다.

 

그런데 이 법이 시대 변화에 맞지 않고 사법부의 판결을 제약한다는 논리를 세운다. “강도 높은 당선 무효 기준이 오히려 정치 참여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고 이에 따라 재·보궐선거를 지나치게 자주 치르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공직 선거법 264조 적용을 받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금배지를 잃은 의원은 15대 국회 7명, 16대 10명, 17대 12명, 18대 15명에 이른다. 엄격한 법 처벌 조항이 있어도 일단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선거 풍토가 바뀌지 않은 탓이다.

 

의원직 박탈 기준을 완화하면 중도하차 의원이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법원이 벌금 액수가 아닌 의원직 박탈이냐, 아니냐를 양형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설령 벌금 하한선을 1천만원 이상으로 높인다 해도 부정선거가 근절되지 않는 한 벌금만 더 낼 뿐 금배지를 떼이게 되는 사람들은 계속 생긴다. 정정당당한 국회의원은 벌금 기준이 10만원이라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벌금형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과 함께 이후 5년 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버젓이 금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잦은 사면·복권 덕분이다. 그것만으로도 혜택은 충분하다.

 

당선무효형 완화 얘기가 나온 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영향 같다. 선관위는 선거와 관련해 100만원 이하의 음식물을 제공받으면 일괄적으로 기부물품 액수의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게 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50배 이하’로 바꾸는 내용의 법 개정 의견을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

 

선관위의 완화 분위기에 편승하려고 하지만 당치않다. 선거법 위반자 의원직 상실 기준을 낮추는 건 국민 무시 행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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