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질서유지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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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상·하원 의장이 안건을 상정하거나 연설을 하는 도중엔 어떤 의원도 회의장 밖으로 나가거나 회의장 안을 통과할 수 없다. 본회의장에 출입이 허용된 사람도 ‘고의적으로 정치적 목적의 운동에 기여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지난 9월 오바마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거짓말(You lie)”이라고 고함을 지른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에 대한 징계 결의안이 채택된 바탕에는 이같이 엄격한 의사 규칙이 있다.

 

프랑스는 의원이 의사진행 및 투표를 방해하거나, 동료 의원에게 공격을 가하면 징계에 회부되고 6개월간 의원 수당의 절반이 감액된다. 일본에선 모든 발언을 단상에서 하도록 규정했다. 회의장을 소란스럽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서다. 또 의장의 허가 없인 단상에 오를 수 없다.

 

영국 하원 의사규칙에는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의원은 즉시 퇴장을 명한다. 거부하는 의원에게는 의장이 의원의 이름을 불러 제재를 가한다’고 못박아 놓았다. 국회의장으로부터 호명을 당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불명예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해당의원에겐 즉시 직무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 하원은 토론 없이 처벌(Punishment) 수위를 표결한다. 초범은 5일, 재범은 20일, 3범 이상은 하원이 정하는 기간으로 처벌수위가 정해져 있다.

 

한국도 물론 국회 질서유지권이 있다. 국회법 145조 1항에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서 이 법 또는 국회규칙에 위배하여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때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이를 경고 또는 제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2항엔 ‘제1항의 조치에 응하지 아니한 의원이 있을 때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당일의 회의에서 발언함을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다’ 하였고, 3항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회의장이 소란하여 질서를 유지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회의를 중지하거나 산회를 선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너무 포괄적·선언적 수준이다.

 

의원들도 국회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자칫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법안 마련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새해 예산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의원의 각종 무질서 언행이 난무할터인데 걱정스럽다. 한국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되려면 아직 멀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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