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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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寄附)는 개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대가성 없이 나누고 베푸는 자선 행위다. 서구에선 오랫동안 기부를 상류층의 도덕적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여겨왔다.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세 귀족들이 신분에 따르는 여러 특권을 누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미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귀족들은 전쟁 등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선봉에 나서서 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귀족들의 도덕심과 솔선수범의 자세는 오늘날 서구 사회 지도층의 생활양식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이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 부자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된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가 깊다. 사회 사업과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바친 경주(慶州) 최 부자의 집안이나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柳一韓) 박사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쇠퇴한 것은 지난 30년간 이뤄진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문제를 국가의 복지 제도에 일임해서다. 그러나 개인의 자선적 기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정부의 손길이 미쳐 닿지 못한 소외된 곳을 보살펴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초보 단계다. 개인 기부자 참여율은 55%로 세계 평균치인 70%에 못 미친다. 기부는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 습관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모범을 보이고 기부에 참여하면 자녀들이 본받게 된다는 말이다. 청소년기 이전에 나눔을 경험한 사람의 70%가 성인이 돼서도 기부를 지속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회 지도층이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효과적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37억 달러를 내놓았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기부 활동은 보통 사람들보다 파급 효과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인 재산의 대부분인 332억4천200만원을 사회에 기부한 것은 생각할수록 대단한 일이다.

 

예년에 비해 올 연말은 기부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탓이겠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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