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서 ‘살림살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살려 쓰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살려서 쓰는 일 중 으뜸이 불을 살려서 쓰는 일이다. 그래서 살림살이에서 제일 중요한 게 부엌의 불씨를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었다.
불은 열(熱)과 같다. ‘열불이 난다’에서 열불은 열과 불을 합친 것으로서 열이 곧 불이다. 이는 ‘늘 상’과 ‘앞 전’에서 늘이 상(常)이고 앞이 전(前)인 것과 같다.
한국인이 열(熱)이라는 한자 낱말을 널리 쓰게 되자, ‘불’과 ‘열’을 다른 것처럼 여기게 됐다.
그러나 한국인이 ‘성나다’나 ‘화나다’의 뜻으로 ‘뿔나다’, ‘열받다’라고 말할 때, ‘뿔’과 ‘열’은 모두 불에 뿌리를 둔 낱말이다.
불은 나고, 붙고, 번지는 것으로써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힘이다. 생명은 안팎에서 얻어지는 불기에 기대어 몸을 늘릴 수 있게 됨으로써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생명에서 불기가 사라지면 몸이 식고 굳어져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한국인은 암컷과 수컷이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일을, 나와 너를 불로 살라서 하나를 이루는 일로 보았다. 사랑은 본디 ‘�b다’에 뿌리를 둔 낱말로서, 나와 너를 불에 살라서 하나의 우리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저절로 안에서 불이 일어나면서 속이나 애를 태우고 끓이며 하나가 되려고 한다. 한국인은 나와 네가 우리로 엮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고운 정과 미운 정으로 속을 태우거나 끓이는 일이 많다.
그래서 ‘속이 탄다’, ‘속을 태운다’, ‘속이 끓는다’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우리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속에 불이 날 일들이 곳곳에 깔려 있는 까닭에 언제나 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을 한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어 모든 것을 단숨에 해치워서 몸과 마음에 붙은 불을 빨리 털어냄으로써 시원하고 후련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우리는 쾌(快)를 ‘시원할 쾌’로 새겨온 것은 속에 쌓인 불을 한꺼번에 날려 버릴 때 몸과 마음에서 느끼는 시원하고 후련한 기분을 최고의 짜릿함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오늘 2010년 1월1일 새불이 붙었다. 보기 좋은 불구경이 기대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