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를 둘러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의 공방이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 논쟁으로 번졌다.
노(魯)나라에서 미생이라는 사람이 사귀던 여자와 만나기로 한 곳이 어느 다리 밑이었다. 약속한 시각이 지나도록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미신은 그래도 다리밑을 뜨지 않고 기다렸다. 시간은 점점 지나 애가 탔지만 오려니하고 참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대같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여 개울물이 넘쳤다. 빗속에서도 여인을 기다리던 미생은 마침내 홍수에 떠내려가 죽고 말았다는 고사다. ‘전국책’(戰國策) ‘사기’(史記) 등 여러 고전에 전해진 것으로 미루어 당시엔 꽤나 화제거리가 됐던 실화로 보인다.
‘미생지신’ 논쟁의 발단은 정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신뢰를 내세워 반대하는 것은 ‘미생지신’과 같다”며 박 전 대표를 꼬집은데서 비롯됐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발끈하여 “미생은 신의가 두터운 사람으로 약속을 어긴 애인은 평생을 자책하며 살았을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미생지신’이란 말이 어떤 뜻으로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과 뭘 모르는 우직함 등 두 가지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긍정적이고 후자는 부정적이다. 정 대표는 비웃는 뜻으로 말하고 박 전 대표는 칭찬하는 뜻으로 말했다. 하나의 고사 숙어에 정반대의 두 가지 해석이 나오는 것은 흥미롭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신의로 보기보다는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쓴다.
박 전 대표는 세상이 다 아는 차기 주자다. 정 대표 또한 차기 주자군으로 분류된다. 벌써부터 신경전이 날카로운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이를테면 ‘죽마고우’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 정치판이라지만, 어릴적 친구끼리도 서로 등을 돌려 헐뜯는 비정이 야박하다. 당내 합의가 끝내 불가하면 당을 떠나라는 분당설까지 나온다. 두 사람의 사이는 ‘미생지신’의 뜻을 긍정적으로 보던, 부정적으로 보던 간에 ‘미생지신’의 관계가 아닌 것 같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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