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는 ‘시린 한겨울 그린 그림’이란 뜻을 지녔다. 얼핏 보면 썰렁한 작품이다. 휑한 화폭에 소나무, 잣나무 네 그루에 둘러싸인 초가집 한 채만을 물기 없는 먹으로 까끌까끌하게 그려 넣었을 따름이다. 마냥 쓸쓸한 느낌이 감도는 ‘세한도’는 그러나 최고 명작으로 꼽힌다. 그림이 사실적 형상이 아니라 작가의 인품과 학식, 인생 역경이 처절하게 녹아 있는 문인화(文人畵)이기 때문일 터이다.
‘세한도’를 추사가 어떤 구상과 창작 배경을 갖고 그렸는지는 수수께기였다. 어떤 경위로 그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었다. 1844년 제주에 유배 중이던 추사가 청나라 서적 등을 잊지 않고 보내준 역관 제자인 이상적(1804~1865)의 푸른 소나무 같은 정성에 보답하려고 그려줬다거나 후대 일본 학자 후지쓰카가 일본에 가져 갔다가 서예가 손재형이 2차 대전 공습을 피해 기적적으로 다시 갖고 들어왔다는 일화만 알려졌을 따름이다. 시거 150년이 지나도록 추사 그림과 관련한 기초적인 문헌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서연구가 박철상씨가 ‘세한도’의 배경을 알아냈다. 20년 이상 추사 문헌 연구에 몰두해 온 박철상씨는 최근 출간한 저서 ‘세한도’에서 희귀고문헌 사료를 수집·분석하면서 ‘세한도’ 그림의 원형은 12세기 송나라의 대문인 소동파(蘇東坡)의 겨울 소나무 그림 ‘언송도’에 뿌리를 두었으며, 청년기 청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대학자이자 그의 스승이 된 옹방강의 서재에 들렀다가 본 ‘언송도’ 관련 시에서 창작의 단초를 얻었다는 사실을 고증해냈다.
박철상씨는 추사의 편찬서 ‘복초재적구’를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스승 옹방강의 시와 시론들을 추려 해설한 이 문헌 서문에 옹방강 서재의 정경을 본 추사의 체험담이 실렸다. 바로 여기에 ‘언송도’에 대해 옹방강이 지은 시구가 나온다. ‘고목이 된 소나무는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라는 ‘고송언개전기호’란 시구다. ‘세한도’의 구도와 똑같다. 그러니까 ‘세한도’는 소동파의 ‘언송도’가 창작의 뿌리이며 스승 옹방강의 詩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이다. ‘세한도’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소동파·옹방강·추사 선생을 만나고 싶어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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