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의 말

빈속을 들여다보며 날을 고릅니다

 

햇빛 드는 날, 바람 부는 날 몇 날일까,

 

속마음을 묻고 또 묻습니다

 

 

깊이와 높이를 따져

 

열어 보고 닫아 걸기도 합니다

 

한없이 낮아지다가 다시

 

마음 가득 채우는 법 없습니다

 

 

어떤 날은

 

대추, 참숯, 건고추 같은 것들

 

나를 제치고 들떠오릅니다

 

삼, 오, 칠, 구 홀수로 넣어둔 그것들

 

남남끼리 서로 바라보라는 당부인지요

 

 

설레기만할 뿐,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정월 달포 동안

 

마음 한편 끝끝내 썩어들지 못해

안달하며 다그쳐보는 나날

 

 

어찌 냄새나지 않겠습니까,

 

바람 나는 때, 햇빛 드는 곳 마다 않고

 

꽃도 피고 삭은 내도 풍기는 엄동설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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