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를 둔 ‘미생지신’(尾生之信)고사 논쟁에 이어 이번에는 박 전 대표가 ‘증자(曾子)의 돼지’ 고사를 들고 나왔다. 증자는 후세 사람이 붙인 존칭이고 본명은 증삼(曾參)으로 공자의 제자인 유학자다.
증자의 아내가 저자에 가는데 아이가 따라가려고 해 갔다와서 돼지를 잡아줄터이니 집에 있으라고 한 것을 본 증자가 정말로 돼지를 잡은 것이다. 저자에서 돌아온 아내가 남편에게 아일 달래려고 한 것인데 정말로 잡느냐고 하자 증자가 아이에게 한 약조를 어기면 안 된다고 말 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 세종시 원안 고수의 이유로 들고 있는 신뢰를 비유해 ‘증자의 돼지’ 얘길 들려 준 모양이다. 약속을 어기면 아이에게도 신뢰를 잃는 터에 하물며 세종시는 더 말할 게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후일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증자의 돼지’를 이렇게 평했다. ‘믿음에 본연의 뜻이 없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면서 ‘실행에 허망한 약조는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군자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고사 얘길 하는 김에 하나 더 들겠다. 송나라 양공이 지금의 중국 하남성에 있는 홍수란 곳에서 BC 638년 춘추전국시대 시절에 겪은 일이다. 송나라와 싸우던 정나라가 세가 불리해 초나라에 지원을 청해 원병이 홍수를 건널 것을 안 양공은 미리 매복해 있었다. 매복한 것 까진 좋았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이윽고 심야에 나타난 초군이 허둥지둥 물을 건너 장수들이 양공에게 공격 명령을 재촉했으나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는 전법은 비겁하다’며 가만 놔두었다. 마침내 초군이 물을 건넌 뒤 전열을 가다듬기에 바빠 이런때 공격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에도 양공은 ‘동등한 조건에서 갖지 않는 싸움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역시 묵살했다. 드디어 전열을 정비한 초군과 싸운 양공은 대패하고 말았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쓸모없이 어질고 쓸데없이 베푸는 아량을 비꼬는 말로 후세사람들이 쓰는 고사 숙어다.
서구 속담에 ‘약속은 지켜야지만, 좋은 약속이 있고 나쁜 약속이 있다. 나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좋은 약속을 안 지키는 것보다 더 나쁘다’란 말이 있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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