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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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다. 24절기 중 첫번째다. 양력으로 2월4일경이다. 음력으로는 섣달, 정월에 들기도 한다. 예전엔 입춘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를 가졌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이다.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 한다.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입춘대길’ ‘가화만사성’ ‘국태민안’ 등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일이다. 대궐에선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작품을 뽑아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써 붙였는데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선인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썼다.

 

입춘날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첫 절기여서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봤다. 또 오곡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믿었다.

 

입춘날엔 각 지방의 민속이 있었는데 제주도의 ‘입춘굿’이 유명하다.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인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했는데 관(官)에서 주관한 게 이채롭다. 해마다 입춘 전날엔 온 섬의 수심방이 관덕정(觀德亭) 또는 동헌에 모여서 전야제를 치르는데 나무로 만든 소에 제사를 지낸다. 이튿날 아침엔 호장(戶長)이 목우에 쟁기를 메운다. 예복(軍服·巫服)을 입은 심방들은 목우를 앞세우고 그 앞엔 기장대·엇광대·빗광대·초란광대·갈채광대·할미광대 등이 나아간다. 그 뒤로 어린 기생들이 따라가며 북·장구·징 등 무악기(巫樂器)를 울리며 호장을 호위하여 관덕정 앞마당에 이른다. 호장은 심방들을 민가에 보내 여러가지 곡물들을 얻어오게 하여 실한 종자를 고른다. 굿놀이 행렬은 다시 동헌에 이르러 농사 놀이, 새 놀이, 사냥꾼 놀이 등을 실연(實演)한다. 그때 목사(牧使)가 나타나 술과 담배를 권하면 구경꾼들도 함께 어울려 태평과 풍년을 축원한다. 관과 민(民)이 화합하는 흐뭇한 광경이 펼쳐진다. 입춘굿은 60여년 전만 해도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각종 민속놀이가 많다. 민속놀이는 소중한 고유문화다. 길이 전승돼야 한다. 오늘은 입춘날, 국태민안의 길운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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